"강정호는 MLB에서 뛴 시간이 짧으니까" 농담도
(인천=연합뉴스) 하남직 기자 = 한국 야구팬들은 여전히 '추강대엽'을 놓고 활발하게 토론한다.
'추강대엽'은 추신수, 강정호, 이대호, 이승엽을 의미하는 '야구팬들의 은어'로 한국이 낳은 타자 중 가장 훌륭한 타자 4명을 일컫는다.
'빅4'에 대한 이견은 크지 않지만, 순서에 대해서는 온라인상에서 격론이 오간다.
'추강대엽 이론'에 따르면 '빅4 중에서도 1순위'로 평가받는 추신수는 7일 인천 연수구 송도 경원재 앰배서더 호텔에서 열린 은퇴 기자회견에서 강하게 손을 내저었다.
취재진이 '추강대엽에 관한 의견'을 묻자, 추신수는 "나는 빼달라. 정말 부담스럽다"고 몸을 낮췄다.
추신수는 미국프로야구 메이저리그(MLB)에서 가장 성공한 한국인 타자다.
부산고를 졸업한 2001년 시애틀 매리너스와 계약하며 미국으로 건너간 추신수는 고된 마이너리그 생활을 견디고 2005년 빅리그에 데뷔했다.
이후 2020년까지 빅리그를 누비며 1천652경기, 타율 0.275(6천87타수 1천671안타), 218홈런, 782타점, 157도루를 올렸다.
출장 경기, 안타, 홈런, 타점, 도루 모두 '코리안 빅리거 최다 기록'이다.
많은 한국 야구팬은 최고의 리그에서 뛰어난 성적을 올린 추신수를 역대 최고 한국인 타자로 꼽는다.
빅리그에서 4시즌을 뛴 강정호, 일본에서 크게 활약하고 MLB에서도 1시즌을 뛴 이대호, 일본에서 8시즌을 보내고 한국 무대에서 '국민 타자'로 사랑받은 이승엽 현 두산 베어스 감독을 2∼4위로 평가하는 근거도 '리그의 수준 차'다.
추신수의 생각은 다르다.
추신수는 "이승엽 선배, 이대호가 MLB에서 충분한 기회를 얻었다면, 나보다 좋은 성적을 냈을 것이다. 미국에서 뛰었다고 내가 더 높은 평가를 받는 건, 정당하지 않다"며 "이승엽 선배는 누구나 인정하는 한국 최고 타자다. 이대호도 훌륭하다. 이승엽 선배와 이대호가 내 앞에 있는 게 맞다"고 밝혔다.
부담스러운 표정으로 이승엽 감독, 이대호의 장점을 설명하던 추신수는 후배 강정호를 떠올릴 때는 긴장을 풀었다.
추신수는 "농담을 한마디 덧붙이자면, 강정호는 MLB에서 뛴 시간이 짧았으니 뒤로 가야 하지 않을까"라며 웃었다.
다음은 추신수와의 일문일답이다.
-- 어떤 선수로 기억되고 싶은가.
▲ 냉정하게 나는 특별하게 뛰어난 재능이 없는 선수였다. 그래도 흔히 '5툴'이라고 말하는 기술이나 능력은 5개 부문 모두 평균 이상은 된 것 같다. 무엇보다 야구에 진심이고, 야구에 목숨을 건 선수라는 평가를 받고 싶다.
-- 기억에 남는 타석이 있다면.
▲ MLB 첫 타석(2005년 4월 22일)에 설 때는 너무 어려서 즐기지 못했다. 내게 의미 있는 딱 한 타석을 꼽는다면, MLB 마지막 타석이 된 2020년 9월 28일 경기를 꼽고 싶다. (당시 추신수는 미국 텍사스주 알링턴의 글로브라이프필드에서 열린 휴스턴 애스트로스와 경기에 1번 지명타자로 선발 출전해 1회말 3루수 쪽으로 굴러가는 번트 안타를 쳤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여파로 당시 경기는 무관중 경기로 치렀다. 텍사스 팬들에게 인사조차 하지 못하고 마지막 타석에 서야 했다. 그래도 텍사스와 이별을 벤치에서 하고 싶지는 않았다. 당시에도 부상을 앓고 있었는데 의사와 상의하고서 '무조건 번트만 대겠다'고 약속하고 타석에 섰다.
-- KBO리그 정규시즌 마지막 타석에 설 때 눈시울이 붉어졌는데.
▲ 감정이 북받친 건 사실이다. 경기 중에는 표현하기 싫어서 눈물은 참았다. 짧은 시간이라고 볼 수도 있지만, KBO리그에서 4년 동안 뛰었다. 야구팬들, 특히 인천 홈 팬들에게는 꼭 인사를 전하고 싶었다.
-- 제2의 인생은 어떤 자리에서 시작할까.
▲ 지금은 몸도 마음도 지친 상태다. 여러 제안을 받고 있지만, 그 자리에 어울릴만한 준비가 되어 있지 않으면 시작하지 않을 것이다. 일단 충분히 쉬면서 천천히 생각하겠다.
- '감독 추신수'를 볼 수 있을까.
▲ 내가 잘할 수 있을까요. 선수로 오래 뛰었지만, 감독으로 준비한 적은 없다. 준비되지 않는 상태에서는 어떤 일도 하지 않을 것이다.
-- 은퇴를 결정한 배경은.
▲ 올 시즌을 시작하기 전에 은퇴를 결심했지만, 올해 부상 탓에 경기에 출전하지 못하면서 현역 연장에 대한 미련이 완전하게 사라졌다. 내가 선수로 더는 뛸 수 없다는 걸 인정했다. 예전에는 벤치에 있으면 뛰고 싶은 열망에 휩싸였지만, 부상 때문에 너무 힘드니까, 그런 욕심조차 사라졌다. 다른 선수에게 출전 기회를 주고 싶은 마음도 있었다.
-- 가장 아쉬웠던 시즌은.
▲ 부상 탓에 48경기만 출전한 2016년이다. 그때 종아리, 허벅지, 손목 등 부상이 이어졌고 '왜 내게 이런 일이 겹칠까'라고 원망하기도 했다. 그런데 돌아보며 나는 부상을 자주 당한 선수였다. 재활 기간을 합치면 3년 정도 될 것이다. 수술도 8번이나 받았다. 그런데 지나고 나니 수술의 흔적도 내게는 훈장이다.
-- 야구를 시작하고서 처음으로 '다음 시즌'이 없는 겨울을 보내는데.
▲ 정말 편안한 겨울이다. 선수들은 좋은 시즌을 보내도, 다음 시즌에 대한 스트레스를 받는다. 이제 더는 다음 시즌을 생각하지 않아도 되는 게 정말 좋다. 아침에 일어날 때, 이렇게 상쾌한 적이 없었다. 잠도 편하게 자고, 식사 조절도 하지 않는다. 하지만, 수술을 받은 뒤에 운동은 했다. '1년 더 하라'는 연락을 자주 받았는데 내 지난 선수 시절을 돌아보면 미소가 나온다. 후회 없다. 이번 겨울은 행복할 것이다. 나에게 '고생했고, 잘 살았다'고 말해주겠다.
-- SSG와 한국 야구를 위한 조언을 남긴다면.
▲ SSG에는 좋은 선수들이 많다. 지속해서 성적을 내는 강팀이 되려면, 점진적인 세대교체를 해야 한다. SSG 선수단 평균 연령이 높은 건 사실이다. 후배들이 서서히 자리 잡도록 구단과 베테랑이 도와야 한다. 한국에서 뛰면서 재능 있는 선수를 많이 봤다. 지금 정상에 있는 선수들은 언제든 자신의 자리를 위협받을 수 있다는 걸 알아야 한다. 후배들은 그 자리를 빼앗고자 애써야 한다. 한국 야구가 발전하는 길이다.
-- 가족들에게 하고 싶은 말은.
▲ 아내와 아이들에게 정말 고맙다. 두 아들은 각각 대학과 고교에서 야구 선수로 뛴다. 야구를 직접 하니까, MLB에 지명되는 게 얼마나 어려운지 알게 된 것 같더라. 예전에는 새벽에 훈련하는 나를 이해하지 못하던 아이들이 이제는 '아빠가 왜 그렇게 열심히 살았는지 알 것 같다'고 말한다. 아이들에게 인정받아서 기분이 좋으면서도 묘하다. 최근 4년 동안 나는 아버지로 살지 않았다. 아이들에게 정말 미안하다. 1년 동안은 아들이 야구하는 모습도 자주 보고, 일반적인 아버지 역할도 하고 싶다.
-- 기억에 남는 지도자가 있다면.
▲ 정말 좋은 지도자를 만나 빅리거가 될 수 있었다. 특히 야구를 시작한 초등학교에서 만난 정장식 감독님, 고교 은사 조성옥 감독님이 생각난다. 두 분 모두 고인이 되셨다. 살아 계셨다면, 이 자리에 모셨을 것이다. 두 분을 내 마음속에 묻었다.
-- 미래의 코리안 빅리거를 예상해보자면.
▲ 한국에서 직접 본 선수 중 이정후(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의 MLB행 가능성을 가장 크게 봤고, 실제 MLB에 진출했다. 김도영(KIA 타이거즈), 김혜성(키움 히어로즈)도 가능성 있는 선수들이다. MLB에는 '평균적인 선수'가 없다. 매 타석에서 1선발로 상대하는 기분이다. 그만큼 어려운 무대지만, 한국에 재능 있는 선수들이 많으니 새로운 빅리거가 탄생하길 기대한다.
-- 팬들이 한국 최고 타자 순위를 '추강대엽' 순으로 부르는데.
▲ 나는 빼달라. 정말 부담스럽다. 이승엽 선배님과 친구 이대호가 이룬 성과와는 견주기 어렵다. 이승엽 선배, 이대호가 MLB에서 충분한 기회를 얻었다면, 나보다 좋은 성적을 냈을 것이다. 정리하자면, 미국에서 뛰었다고 다른 타자들보다 우위로 평가받을 수 없다. 이승엽 선배는 누구나 인정하는 한국 최고 타자다. 이대호도 훌륭하다. 이승엽 선배와 이대호가 내 앞에 있는 게 맞다. 농담을 한마디 덧붙이자면, 강정호는 MLB에서 뛴 시간이 짧았으니, 뒤로 가야 하지 않을까.
-- 25년 동안 응원해준 팬들에게 인사하자면.
▲ 내가 미국에서 뛸 때 내 경기를 보면서 아침을 시작한다는 팬들의 목소리를 들었다. 한국에서 은퇴 사인회를 하면서 '멀리서 보던 추신수 선수를 가까이에서 보게 돼 기쁘다'는 말도 들었다. 그런 말씀에 마음속으로 울었다. 팬들의 응원에 보답하기 위해서라도 한국 야구에 도움이 될 일을 하고 싶다.
--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은.
▲ 다시 태어나도 야구 선수로 뛰고 싶다.
jiks79@yna.co.kr
<연합뉴스>
2024-11-07 16:42:48